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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프로젝트 6. 냉장고 정리
      2013. 1. 21. 14:49

우리집에서 주방을 쓰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부모님은 식당을 하시기 때문에 거기서 모든 주방일을 다 하시고, 남동생은 주방에 들어올 일 자체가 없고, 결국 주방은 내 독차지. 그래도 엄마가 워낙 정리를 좋아해서 주방은 늘 잘 정돈되어 있다. 내가 사 모은 각종 주방도구들도 엄마가 정리해주신다. 특히 설거지는 나도 자주 하니까 싱크대 주변은 깨끗한 편이고 가스렌지 주변도 그렇다. 평소에 별로 요리할 일이 없으니까 기름때 튈 일도 별로 없고, 일단 기름때를 발견하면 엄마가 부지런히 박박 닦는다. 그 외 베이킹 도구는 한 곳에 대충 수납하고 있는데, 오븐용 팬은 어차피 차곡차곡 쌓거나 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 잘 쑤셔넣는 게 최고다. 내가 산 빙수기와 휴롬, 푸드 프로세서, 믹서기, 커피 메이커, 반죽기, 엄마가 산 요구르트 제조기, 슬로우 쿠커, 찜기, 전기포트, 선물받은 도깨비 방망이, 두부 제조기 등등 그 외에도 몇몇 소가전들이 주방을 꽉 채우고 있다; 가끔 쓰는 건 찬장에 넣고 그때 그때 필요할 때 꺼내 쓴다.

 

냉장고 안에는 각종 베이킹 재료를 비롯해 온갖 소스류, 건강식품, 말라 비틀어진 식재료들이 있었다. 샐러드 드레싱과 돈까스 소스 등 유통기한이 긴 것을 빼고, 척 보기에도 위험할 것 같은 각종 양념들을 다 버렸다. 오래된 식재료와 베이킹 재료도 버리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께서 선물받으신 꿀이며 오미자차, 홍삼 진액, 엄마가 담근 매실 원액 등이 냉장고 공간을 몇 년이고 차지하고 있었는데 다 가게로 가져가시라 했다. 가게로 가져가야 부모님도 자주 드실 수 있을테고 냉장고도 비울 수 있어서이다. 부피가 큰 것들을 처리하고 나니 갑자기 냉장고가 샐러드 드레싱 및 멘쓰유, 소스, 장류 외에는 텅 비게 되었다.

 

냉동실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정리했다. 1년 전부터 처박혀 있던 생선, 냉동 쿠키 반죽, 음료수 페트병, 각종 식재료들을 남김없이 쓰레기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행주로 안을 잘 닦았다. 그 결과 역시 냉동실 안도 닭가슴살 팩 몇 개를 제외하고는 휑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요즘 같은 계절은 사실 채소나 두부 같은 신선식품을 사도 냉장고 안에서는 다 얼어버린다. 온도는 최대한 높게 조절하는데 그래도 안 된다. 그래서 겨울 들어 제대로 된 음식을 한 적이 없고, 샐러드도 안 해 먹는다. 그래서인지 비타민 부족인 것 같다. 외식으로만 뭐든 해결하니까 건강에 좋을 리가 없는데, 막상 집에서 뭘 만들려고 하면 온갖 재료를 다 사야 하니까 (김치도 없다), 파, 양배추, 양파, 이런 것들이 금방 시들어 말라 버리고 해 놓은 음식도 혼자 먹다보면 결국 남게 되어 냉장고에 계속 보관하게 된다. 소량으로 한 웅큼, 한 자밤 씩만 사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고;

 

이제 거의 모든 정리가 끝났고 제일 중요한 내 몸 질서 정리가 남았는데 그건 멋대로 '제로 프로젝트' 라고 이름붙인 디톡스 프로그램을 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여러 번 효과를 봤는데 제일 마지막으로 한 게 2011년 12월 초였다. 아무튼 그에 관해서는 따로 정리하기로 하고 기나긴 정리에 관한 글을 마친다.

정리 프로젝트 5. 수첩 및 통장 정리
      2013. 1. 21. 14:22

나처럼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의 문제는 늘 수첩과 필기도구가 넘쳐 난다는 것이다. 2년 전에 한 번 수첩이랑 공책들을 싹 정리했음에도 불구하도 또 내 방은 각종 노트와 수첩들로 범람하게 되었다. 2년 전 대청소의 교훈도 있고 해서 새로 산 문구류는 생각보다 적었지만 개중에는 사은품으로 받은 묵직한 무지 노트들과 어디서 증식했는지 모를 볼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볼펜의 증식에 대해 한탄하지 않았는가. 그 마음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는 직업 특성상 볼펜을 사용하는 일이 많은데, 알뜰하게 끝까지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중간에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열심히 쓰고 있는데 잉크가 안 나오거나 하면 버리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필통에 꽂아놓고 잊어버린다. 이번 기회에 그런 놈들을 일일이 테스트해 보고 다 버렸다.

 

수첩들은 중학교 시절의 시스템 다이어리를 비롯해 델문도 레시피 노트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는데, 나 자신의 소중한 기록에 해당하는 것들은 상자 안에 넣어 잘 보관하고 그 외에 좀 끄적거리다 만 거나 낙서가 주류인 것들은 다 버리기로 했다. 수첩을 정리하는 건 항상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수첩의 양 때문이라기 보다는 괜히 들춰보면서 추억에 잠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기 때문에(...). 편지나 연하장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의자 밑에 유치원 때부터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며 편지들이 잔뜩 쌓여있는데 그 피아노 의자가 공교롭게도 지금 안방 티브이를 올려놓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서 그 안은 정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받은 우편물들은 내 방에 있는데 그 중에서 버려도 되는 것들은 냉정하게 버리고, 나머지 연하장과 편지들은 예쁜 상자에 넣어서 따로 보관하기로 했다. 버려도 되는 건 대충 별로 친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생일 축하 카드 같은 것들.

 

통장도 상당히 많았는데 특히 체크카드를 사용한 이후부터 통장이 급격히 늘었다. 가계부나 마찬가지니 통장 정리 커버에 넣어 보관했고, 한 2년 정도 통장 정리를 안 했다는 게 생각나 은행에 가서 한꺼번에 통장 정리를 의뢰하고자 주거래 은행 두 군데의 가장 최근 통장을 꺼냈다. 원래 꼬박꼬박 하고 있었는데 취직하고 나서 잘 안 하게 됐다. 은행 한가한 시간에 가서 부탁드리려고 늘 갖고 다니는 가방에 넣었다. 그게 어제 일이라 이번주 내로 가서 할 계획이다.

 

예전에 공부하면서 받은 프린트들이며 파일들도 그냥 다 버렸는데, 이렇게 기록물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고, 뭔가 새로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내가 공부한 것들 보니 열심히 한 것들도 많았는데 지금의 나태한 내 모습에 좋은 자극이 되었다. 지금의 몰스킨 다이어리도 연초부터 꼬박꼬박 꼼꼼하게 잘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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