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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프로젝트 2. 방 정리
      2013. 1. 21. 13:35

저번에 책 정리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무사히 책 정리를 마쳤다. 아직 여행가방으로 두 묶음 정도 있는데 날씨가 계속 좋지 않은데다 갑자기 바빠지는 바람에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걸 빼면. 책은 주로 알라딘 신촌점에 갖다 팔았고 안 받아주는 책은 신촌 간 김에 북오프에 갖다 팔았다. 알라딘 신촌점은 팔려는 사람이 꽤 많아서 점심시간 이후에 가면 상당히 붐빈다. 그런데 붐빌 때 가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책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아서 그냥 다 최상으로 찍어주는 경우가 간혹 있다. 나는 책을 평소에 깔끔하게 보는 편이 아니고 우리 부모님도 내 책을 자주 빌려가시는데 가게에서 틈틈이 읽다보니 역시 책이 좀 상태가 좋지 않다. 그래서 불안불안한 것들이 좀 있었는데 그냥 싸잡아 최상이 되면 솔직히 기쁘다. 아무튼 알라딘에서 받은 돈만 어림 잡아 80만원 가까이 된다. 남아있는 것까지 하면 90만원 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알라딘이 북오프보다 가격을 훨씬 많이 쳐 주는 느낌을 받았다. 단 일본 원서는 북오프가 훨씬 잘 준다. 특히 알라딘은 '명탐정 코난' 같은 만화책 원서는 안 받아주는 게 너무 많다. 모조리 북오프에 갖다 팔았음. 북오프가 더 친절하기도 했다. 얼마 없긴 했지만 시디도 몇 장 갖다 팔았다.

 

책을 갖다 판 것으로 끝난 건 아니고, 그동안 책들이 차지하고 있던 서가며 붙박이장 안을 정리하는 일이 남아 있었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일단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책장에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됐는데 궁여지책이지만 책을 한쪽으로 몰기도 하면서 너무 허전해 보이지 않게 다시 꽂았다. 붙박이장에 있던 건 주로 토니 자료들인데 이건 한 2년 전에 거의 다 정리했다. 그 때는 몇 백 권은 됨 직한 잡지들 (파스텔, 토마토, 뷰 등등)을 다 버렸고, 수십 개에 이르는 녹화 테이프들을 (한 개에 180분 짜리가 대부분에 광고 자르고 3배속 녹화가 많았다. 540분 꽉꽉 토니 영상으로만 채워진) 재활용 쓰레기에 갖다 버렸고, 그 외 엔시디, 잉글리시 팡팡, 팬클럽 회지, 스티커, 브로마이드 모음 등등 다 갖다 버렸다. 이걸 버린 것만으로도 붙박이장이 한결 나았다. 저번에 싹 정리한 덕분에 이번에는 토니 자료는 정리할 게 없었다. 아직 문방구 사진이랑 잡지 스크랩북이랑 음반은 버리지 않았지만 워낙 깔끔하게 잘 정리한 탓에 자리를 별로 차지하지 않았다.

 

토니 자료가 떠난 자리에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던 건 이번에 내다 판 각종 책들 외에도 팔기 애매한 서적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게 교재류와 사전류. 교재는 대학교재와 일본어 공부 교재가 많았는데 그냥 다 갖다 버렸다. 이제와서 초중급 교재를 볼 일은 없을 것 같고 내가 공부하던 책을 남에게 물려주는 시대도 아니니. 사전은 어릴 때부터 쓰던 국어사전과 영어사전, 옥편, 일본어 한자읽기 사전, 프랑스어 사전 등이었는데 난 예나 지금이나 사전을 좋아해서 모든 사전에 사용감이 상당했다. 이것도 이번 기회에 다 버리기로 했다. 아무튼 이렇게 버릴 책을 쌓아놓고 보니 또 이게 몇 백 권은 되는 지라 동네 고물상 아주머니에게 직접 오시도록 부탁했다. 분명히 2년 전쯤 버릴 수 있는 책은 다 버렸다고 생각했고 그 때도 북오프 담당자를 직접 집으로 불러 수백 권의 책을 팔았는데 또 어느새 이렇게 책이 쌓인 건지 모를 일이다.

 

그 다음은 각종 충전기며 한물 간 전자제품의 차례였다. 일단 예전 휴대폰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초콜릿폰, 아이스크림폰, 일본에서 쓰던 휴대폰도 있었는데 성당에 따로 수거하는 함이 있으니까 내용물을 잘 지운 후에 거기다 갖다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충전기며 케이블이 많았는데 그냥 다 갖다 버리기로 했다. 아이팟 3세대와 4세대는 예전 전자제품을 좋아하는 학생에게 줬더니 엄청 좋아하더군. 그 외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은 무조건 버리기로 했다. 방을 산만하게 하던 주 원인이었던 온갖 인형들은 몇 개만 남기고 다 상자에 고이 넣었다. 오래된 화장품도 아깝지만 폐기.

 

문구류도 마찬가지였다. 문구를 좋아해서 펜이라든가 노트를 많이 사 모았는데 쓰다가 말고 앞으로도 영원히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게 있어서 다 재활용 쓰레기로 내 놓았다. 잘 안 나오는 볼펜이나 중성펜도 하나하나 테스트하고 다 쓰레기통행. 선물받았는데 취향이 아니라 쓰지 않는 물건들도 미안하지만 다 버렸다. 뿐만아니라 약통에 있던 오래된 조제약들도 싹 버렸다. 오래된 수첩과 다이어리들은 2년 전에도 상자에 잘 정리했지만 나머지 것들도 중요한 건 잘 정리해서 붙박이장에 한꺼번에 보관하고 그 외에는 다 종이 쓰레기로 버렸다. 좌우지간 이렇게 화끈하게 버리고 나니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끌어안고 살았는지 다시금 반성하게 되었다. 2년 전에도 큰 쓰레기 봉투로 몇 봉지, 수많은 재활용 쓰레기들을 버리면서 반성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사 놓고 읽지도 않은 책들, 몇 번 바르다가 만 화장품 (특히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샘플들), 먹지도 않는 약, 먼지 쌓인 인형, 몇 번 하다가 팽개친 바느질&뜨개질 도구. 2년 전에 갖다 버린 것까지 하면 이게 도대체 얼마치야?

 

정리 후 내 방은 한결 넓어졌고, 살이 빠진 것도 아닌데 왠지 가벼워진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는 쓰레기 늘리지 말고 알뜰살뜰하게 아끼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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